영화 '보통의 가족'은 개봉 전부터 용산 cgv에 예고가 상영됐을 때부터 보고 싶던 영화였다.
절대 실패할 일 없는 대배우 김희애와 설경구(무려 안경 쓴) 조합과 결코 보통이 아님을 시사하는 영화 제목 때문에 예고를 보자마자 1초 만에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라는 판단과 예매를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섰던 영화였다.
원래 상영 전에 단 한 장면도 스포 당하는 것을 싫어해서 항상 흐린 눈으로 예고편을 거의 보는 둥 마는 둥 하기 때문에 장동건까지 출연한다는 사실은 예매할 때가 돼서야 포스터를 보며 알게 되었고 기대감이 더욱 증폭됐다. 심지어 대배우들의 무대인사 영화를 VIP쿠폰으로 겟하다니, 개이득 럭키비키다.
GV는 많이 봤지만 영화 ‘왕의 남자’ 이준기 무대인사 빼고는 무대인사를 본 경험이 거의 없던 터라, 영화 시작 전에 배우들이 나와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재밌게 봐주시고 좋은 하루 되시고 안녕히 가세요~” 라며 잠깐 무대 인사하고 가는 건지 헷갈렸으나 광고 후 즉시 극장이 깜깜해지며 영화가 시작됐다.
유튜브에서나 실제로 흔히 보았던 도로 위의 운전자 간의 싸움을 시발탄으로, 시작부터 관객에게 얼얼한 충격을 준다.
섹시한 안경과 수트핏의 변호사 설경구와 병원에서 잠깐 얼굴 마주하며 진료만 해도 환자 병이 다 나을 것 같은 의사 장동건과 김희애가 부부라는 설정부터 보통이 아니다.(심지어 장동건이 연하남편) 설경구는 피해자를 죽음으로 이끈 가해자를 변호하고 동생인 장동건은 그 가해자로 인해 입원한 딸을 치료하는 상반된 구도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성인 캐릭터들 배역 이름은 장동건이 연기한 재규 빼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자녀 두 명 시효와 혜윤이의 이름만 생각난다. 중간중간 오은영 박사님을 모셔오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 자녀 문제로 주를 이룬다. (기억나지 않는 캐릭터명을 언급하기는 어색하니 배우 이름으로 대신 쓰겠음)
두 형제 부부는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불편한 저녁식사를 한다. 치매끼가 있는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하는데, ’ 우리가 모시지 못해 미안하다 ‘, ‘요양원이 아니라 리조트예요 ‘ 나누는 대화가 너무 현실적이라 꼭 옆테이블에서 남의 가족 얘기를 엿듣는 기분이었다.
설경구가 장동건에게 아내를 생각하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다그치듯 주장하는 대목에서 설경구의 말이 맞다고 격하게 속으로 끄덕였다.
설경구의 두 번째 아내 수현과 김희애의 갈등도 볼만하다. 나이차이 때문에 서로를 동서와 형님으로 부르기 힘들어하고 화장실에서 기싸움을 하는 데 서로 대놓고 모욕하지도 않는데 묘하게 현실적이고 기 빨린다. 역시 김희애는 눈으로 욕을 하고 뺨을 후려치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배우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틀 안에서 끊임없이 각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정의해야만 서로를 감당할 수 있는 관계에서 오는 위화감을 영화가 잘 다뤄준 것 같다.
장동건 아들 시효와 설경구 딸 혜윤이가 노숙자를 죽도록 폭행한 일로 두 형제네 부부는 다시 골져스한 레스토랑에서 불편한 미팅을 한다.
설경구는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답게 일단 노숙자가 죽을 때까지는 쉬쉬하고 지켜보자는데 대사처리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담담해서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김희애는 자수시키겠다는 남편을 보며 정의의 사도냐며 차라리 나를 죽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그 순간은 정말 그 자리에서 찢어져서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부르짖는데 연기라고 느껴지지도 않고 한국 어머니 그 자체였다.
우는 모습이 참담하고 안쓰러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현이 매번 갈굼만 당하는데도 담배를 건네주는 장면도 지극히 자연스럽고 수긍이 된다.
아들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보통의 어머니는 악역과 다름없는 광기를 가진다. 세계 기아를 위해 사회봉사하고 약자를 위해 일하던 김희애는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살던 노숙자는 어차피 이번 겨울에 죽을 운명이었다’며 아들에 있어서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상대적인 윤리관으로 남편을 설득한다.
당신은 의사로서 많은 사람을 살리지 않았냐며 우리는 그럴 수 있지 않느냐며 애원할 때는 나도 거의 설득당했고 아들을 거칠게 경찰로 끌고 가던 장동건도 그 시점을 기준으로 아내를 이기지 못하고 일심동체되어 나중에 캐릭터가 변화한 듯하다.
뜬금없지만 배우 수현은 어벤져스에서의 연기만 봤기 때문에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배우인지는 이번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다.
수현의 캐릭터는 이 극에 나오는 인물들 중 말 그대로 제일 보통에 가까운 사람이라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김희애가 아들 문제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수현이 테라스에서 말없이 담뱃불을 붙여주는 모습은 영화에서 크게 중요한 장면이 아님에도 제일 기억에 남는다.. 좋은 소리 기대하고 준 건 아니라는 듯, 괜한 소리 듣기 전에 불 붙여주고 바로 자리를 뜨는 모습이 꽤 현실적이었고 여자들의 관계성을 전형적인 기싸움으로만 소모시키지 않아서 반가운 장면이었다.
형에게 투덜대는 동생으로서 보여준 장동건의 연기는 오히려 차도남 연기를 할 때보다도 더욱 매력적이고 신선했다. 송구스럽게도 지금까지 미남이란 생각은 못했는데 이 영화에서 인간적인 연기로 인해 잘생김의 시너지가 놀랍도록 폭발했다. 장발도 너무 취저였음.
청소년 연기를 한 시효와 혜윤이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혜윤이를 연기한 배우는 영드 스킨스의 에피 뺨치는 고양이 마스크를 갖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 예쁘지만 내면은 잔혹하고 공허한 이면을 보여주는데 제격이었다.
마지막에 시효가 혜윤과 웃고 떠들며 아기에게 본인들의 폭행영상을 보여주며 자랑할 때는 믿을 수 없이 배신감이 들었는데 시효가 극의 반전을 극대화하는데 한몫했다고 본다. 원래 개쎈 혜윤이는 그러려니 하는데 아버지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던 시효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참을 수 없이 가벼워 거세게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진부한 사실을 다시금 충격적으로 상기시킨다.
아버지가 일사천리로 나쁜 놈들의 죄를 살인죄에서 상해치사죄, 무죄로 가볍게 만드는 능력자인데 그 모습을 보는 자녀가 잘못된 가치관을 갖게 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고 그럴 법하다. 한 편으로는 나쁜 놈 변호하는 자들이 저런 저주를 받았으면 하는 대중의 마음을 이야기로 대변해 준 것 같기도.
설경구가 가해자를 찾아와 변호 상담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후진을 한 이유는 도피할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네, 맞아요. 변호사님.’ 그 배우는 설경구에게 슬며시 미소 지으며 동조하고 법원에서 웃참하는 연기를 패주고 싶게 잘하더라.
‘라면이나 하나 끓여주세요’, ‘담배 하나 있으면 주세요. ’ 설경구의 은은하게 권위적이면서도 공손한 저 두 대사도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설경구가 장동건을 일부러 거의 칠 듯이 급가속하며 차로 다가와서 ‘나 같은 변호사를 만나면 살인죄도 상해치사죄가 되는 거야’ 오만하게 허세를 떨다 결국 차에 치이는 부분은 허를 찌르고 수미상관이 있었다.
영화는 포스터부터 예고했던 것처럼 관객에게 생각하는 기회를 던져준다. 가족과 함께 본다면 토론하는 재미가 있겠다.
같이 영화를 본 남친에게 물어봤다. 오빠 같으면 자식이 저런 짓을 했을 때 어떻게 하겠냐고. 남친은 만약에 자식이 저렇다면 직장 가서 집중 안 돼서 일도 못할 거라 했다. 앞으로 자식이 살인자가 돼서 살게 될 테니 많이 고민이 될 거라며.
솔직히 나는 고민할 거리가 없었다. 내 자식이니 더욱 경찰에 끌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방치하면 더욱더 잔인하고 역겨운 범죄를 저지를 것이 뻔하고 그 폭력이 나중에 나 자신에게 향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애초에 자식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자녀에게 사죄를 하되 치러야 할 대가는 치르도록 할 것이다. 아, 그런데 자식 감옥 보냈다가 출소해서 오히려 부모한테 보복하려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확 드네. 역시 자식을 안 낳아봐서 절대 그 감정을 가늠하거나 공감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말 씁쓸한 부분은 영화상의 저런 '보통의' 가족들이 흔히 있을 법하고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마음속에 결핍으로 구멍이 커져있다면 누구든 시효와 혜윤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모두 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청하며 애가 그 지경이 되지 않도록 오은영 박사님의 다양한 처방을 공부하자.
영화가 끝나고 무대인사를 위해 경호원 같은 스태프들이 무대를 메웠고 쉽사리 극장을 탈출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사람들도 갑자기 앞 열로 우르르 이동했다.
설경구 님과 장동건 님 그리고 감독으로 보이는 분이 등장했다. 김희애 님을 보지 못해 무지 아쉬웠다.
장동건 님은 술술 준비한 멘트를 착실히 해주셨고 설경구 님은 날씨가 정말 좋지 않냐며 가족들과 보기에 매우 좋고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의미 깊은 영화이며, 동건님이 무대인사를 많이 나갔는데 자기는 많이 참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말을 길게 해 주셔서 만족스럽고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관객이 손을 들으면 배우들이 찾아가서 포스터에 직접 싸인을 해주고 셀카도 찍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몸도 마른 두 분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관객 옆에 쭈그리시는 모습에 이젠 대배우들도 영화를 위해 몸소 이런 서비스를 해주시는구나, 굉장히 열일하신다 생각 들며 괜히 미안하고 고생시키고 싶진 않은 마음에 남친이랑 나는 차마 손을 들지 못했다. 뒷자리 분들이 ‘여기는 한 번도 안 왔어요~ㅠㅠ‘라며 외쳤는데 어차피 적당히 몇 분만 싸인해드리고 안 붙잡히고 알아서 잘 가시더라. 서둘러 출구로 나가시는 모습에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단정한 차림의 두 배우를 실제로 보니 역시 배우는 영화 속 스크린에서 제일 빛나고 스크린 밖의 배우는 그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인간처럼 느껴지고 친근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화에서 자세히 얼굴의 디테일이나 캐릭터를 볼 수 있으니 영화 속 외모가 더 화려하게 느껴졌는데 남친은 영화에서 오히려 더 나이 들어 보였는데 실제로는 더 말랐고 젊어 보였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실제로 촬영하는 장동건을 옆에서 봤었는데 굉장히 잘생겼었다고.
보통의 가족은 호화캐스팅에 눈도 즐겁고 오래간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날카로운 연출에 감성 있는 한국영화였다.
주인공들이 가족사진을 함께 찍는 쿠키영상을 마지막으로 보며 ’아, 이걸로 끝이구나..‘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쉬운 점은 이 호화캐스팅에 부부가 쌍으로 나오는데 19금 씬이 없었다는 점?.. 장동건과 김희애가 초반에 떡방아조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훈훈한 부부케미를 볼 수 없었다는 점?.. 영화 보기 전에는 반드시 관람가도 체크를 해야겠단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다.. 난 혼자 엄하게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ㅋ...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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